마음내리기

# 무거운 마음 내리기 6편-참는 아이, 말하지 못한 감정 – ‘참는 문화’에 대하여

오 린 2025. 4. 1. 20:48

참는 아이, 말하지 못한 감정 – ‘참는 문화’에 대하여

둘째 아이를 낳고 며칠 지나지 않아, 큰아이에게서 이상한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여린 입술을 꼭 깨물고 잠드는 모습.
밤중에 살며시 들여다보면, 이를 악문 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라 손으로 조심히 아랫입술을 떼어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왜 저럴까?" 하는 의문만 있었고,
아이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그 입술에 얼마나 많은 말 못 할 감정이 담겨 있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되었지만, 감정에 대해서도, 아이의 마음을 읽는 법도 몰랐던 그 시절.
돌이켜보면 그 무지함이 제 아이의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겼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은 말해지지 못한 채 입술에 맺혀 있었다"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표현하지 못했기에, 감정을 숨기고, 참는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을 감당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작은 입술 하나로 말이지요.

지금이야 육아에 대한 정보도 많고, 감정코칭이나 마음돌봄이라는 단어도 익숙해졌지만,
35년 전 그 시절의 나는, 감정의 흐름조차 제대로 몰랐습니다.

내가 미처 돌보지 못했던 큰아이의 마음은
늘 나를 따라다니는 조용한 그림자처럼 남아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무거운 마음이 들고,
그저 아이에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마음속으로 되뇔 뿐입니다.


“참는 것”이 미덕으로만 여겨져 온 사회

우리는 참는 걸 미덕으로 배웠습니다.
‘화를 내면 안 돼’, ‘기분 나빠도 말하지 말고 참아’, ‘부드럽게 넘어가자’
그런 말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성숙한 태도처럼 여겨졌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의 감정은 점점 더 안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감정을 참는 행위가 반복되면, 마음의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요.
불안, 우울, 만성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두통, 소화불량, 피로감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눌러두면, 그 감정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깊은 물속에 가라앉은 돌처럼 가슴 어딘가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때로는 폭발하듯 터지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무기력이나 자책감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한국심리학회 조사로 본 ‘감정 억제 사회’

최근 한국심리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 중 무려 67%가 ‘불편한 감정을 참는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대부분은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볼까 봐”,
혹은 “대인관계가 불편해질까 봐”였습니다.
즉,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심리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참는 법은 배웠지만,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거죠.


감정 표현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습니다.
감정을 말로 풀지 못하면, 결국 더 큰 고통이 남는다는 걸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이기적인 게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관계’를 지키고, ‘자기 마음’을 돌보는 아주 건강한 행동입니다.
부드럽고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감정을 나누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말이에요.


‘마음내리기’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첫걸음

‘마음내리기’는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인정하고 풀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왜 그런지,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죠.

감정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심이 깃든 감정 표현은, 나와 타인을 더욱 연결해줍니다.


마무리하며 –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이제는 참는 것만이 미덕인 시대를 벗어나야 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하고, 나누는 문화.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배워야 할 지점입니다.

감정을 말로 풀 수 있는 용기,
서로의 마음에 다정하게 반응하는 자세,
그런 것들이 우리를 조금 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로 이끌어줄 거라 믿습니다.


당신의 감정도 괜찮아요.
말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고,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 마음내리기 시리즈 5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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